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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헌법 개혁방향 (중앙대 제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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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헌법 개혁방향

제 성호(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Ⅰ. 서론

20세기의 분단국은 냉전(Cold War)의 산물이었다. 냉전시대에 실재하였거나 탈냉전시대인 지금까지도 현존하는 분단국가는 모두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경제) 체제와 사회주의(중앙통제식 계획경제) 체제로 분열되어 서로 대립해 왔다. 남북한, 동서독, 남북 베트남, 남북예멘, 중․대만의 경우가 다 그러했다. 이들 중 남북한과 중․대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통일을 이룩했다.
서로 상극적인 사상과 이념의 차이로 대결하던 분단국 구성체들은 각자의 헌법에 의해 자신의 존재방식을 규정하였다. 남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남북한의 헌법은 국가의 통치조직과 통치작용의 대강을 정하고 있어, 이를 통해 우리는 국가의 구조와 현상형태를 인식할 수 있다.
문제는 남북한의 헌법 사이에 너무나 큰 간격이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남북한이 대한민국 헌법 제4조가 명시하듯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향해 나아갈 경우 불가피하게 헌법통합의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의 헌법 비교와 북한 헌법의 개혁이라는 과제가 선결적으로 요구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고에서는 남북한의 헌법을 개괄적으로 비교하고 북한 헌법의 개혁방향을 제시하기로 한다. 먼저 남북한의 헌법관 내지 헌법의 기능을 고찰하고, 남북한 헌법의 기본원리(국가구성 및 운영원리)상의 차이를 살펴 본 다음, 이를 기초로 헤서 북한 헌법의 개혁방향을 도출하기로 하겠다.

Ⅱ. 남북한의 헌법 비교

1. 남북한의 헌법관: 헌법기능상의 차이

헌법은 나라의 기본법을 말한다. 대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은 그 나라의 통치조직과 통치작용의 원리를 정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국가최고법을 의미한다.
하나의 사회공동체를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나라의 최고기관을 어떻게 조직하고 또 어떤 권한을 주어야 하는가를 법으로 분명히 정하고, 이 기관들이 서로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그리고 나라와 국민 사이에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에 관한 기본원칙을 정한 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법이 바로 헌법인 것이다. 이 같은 헌법관은 자유민주주의적 헌법관으로서 우리나라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남한에서 ① 헌법은 국가창설적 기능, ② 정치적 정의실현기능, ③ 기본권 보장기능, ④ 권력통제기능을 수행한다.
첫째, 헌법은 사회공동체를 정치적으로 통일시켜 국가공동체를 창설하는 기능을 갖는다. 헌법은 국가를 조직하고 국가기관을 구성하며 각 국가기관의 권한을 정한다. 요컨대, 국가는 헌법에 의하여 창설된다.
둘째, 헌법은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가 합리적으로 형성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정권이 특정집단이나 특정계층에 의해 독점되어 국민의 정치적의사가 왜곡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정치적 정의를 실현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셋째, 헌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본권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키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제도를 함께 규정하고 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 보장은 곧 국가 공동생활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넷째, 국가기관이 갖는 권한은 항상 남용되거나 악용의 소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헌법은 국가기관의 권한행사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권력분립은 그 대표적인 것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북한에서는 헌법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또 국가적․사회적으로 어떠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가? 북한의 헌법학자 심형일에 의하면, “사회주의헌법은 근로대중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법적으로 옹호보장하는 로동계급국가의 기본법으로서 당과 국가의 정책을 옹호하고 사회주의전취물을 지키는 프로레타리아독재의 예리한 무기로, 사회주의경제문화 건설을 다그치고 사람들을 공산주의 사상의식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는 위력한 수단으로 복무한다.” 그는 또 “사회주의헌법은 프로레타리아독재 실현에서의 계급로선과 군중로선의 관철, 프로레타리아독재의 국가적 규률과 법질서의 강화, 사회주의제도와 혁명의 전취물을 수호하는 데 대한 무장력의 사명, 제국주의자들과 온갖 적대적 요소들의 책동에 대한 혁명적 경각성의 제고, 사법검찰기관들의 구성과 임무, 활동절차 등 계급적 원쑤들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견지하여야 할 중요 원칙들과 규범들을 설정함으로써 적대분자들을 진압하는 투쟁을 전사회적 범위에서 정확히 진행할 수 있게 하는 지침을 밝혀주며, 원쑤들의 책동을 성과적으로 짓부실 수 있게 하는 법적담보를 마련하여 준다”고 한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을 포함한 자유민주국가들을 쳐부수기 위한 도구가 (사회주의)헌법이라는 것이다.
북한에서 헌법이 갖는 기능은 크게 ① 진압적 기능, ② 조직동원 기능, ③ (사상)교양적 기능의 세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 사회주의헌법은 프롤레타리아독재의 무기로서 온갖 적대적인 요소들의 싹이 돋아나는 것을 철저히 진압하여 국가의 정책을 옹호하고, 혁명의 전취물(즉 프롤레타리아정권, 사회주의제도, 사회주의경제․문화 건설의 여러 가지 성과 등)을 수호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둘째, 사회주의헌법은 근로인민대중의 지위와 역할을 명백히 규정하는 한편, 근로인민대중의 의사와 요구를 전면적으로 구현하고 이들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인민대중의 높은 혁명적 열의와 창조적 적극성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사회주의헌법(행동규범과 생활준칙)은 근로인민대중의 의사와 요구를 국가적 의사로 종합하고 체계화한 것인 만큼, 그것은 언제나 대중 자신의 것으로 전환됨으로써 진정으로 조직동원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셋째, 사회주의헌법은 당의 노선과 정책의 기본문제들을 전면적으로 구현하고 ‘공산주의도덕의 기본요구’들을 폭넓게 반영하고 있으며, 온 사회의 혁명화와 노동계급화를 국가의 중요한 임무의 하나로 규정하고, 그 실현을 위한 ‘국가기관들의 활동규범’과 정치사상생활에서 근로자들이 지켜야 할 ‘사회주의적 행동준칙과 생활규범’들을 구체적으로 밝혀준다.
헌법의 진압적 기능, 조직동원 기능, (사상)교양적 기능은 오로지 북한 헌법에서만 존재하는 고유한 현상으로서 자유민주주의국가의 헌법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다.
위의 3가지 기능 외에도 북한 헌법은 헌법 본래의 기능으로서 국가조직규범으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다고 본다.

2. 헌정질서 및 국가구성원리 상의 차이

남북한은 헌정질서(국가기본질서)와 국가구성원리 등에 있어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첫째, 남북한은 국가형태에 있어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이하 남한 또는 한국이라 함)은 민주공화국이다(한국 헌법 제1조 제1항). 이것은 남한의 ‘국가형태’를 규정한 것이다. 공화국 형태의 채택은 헌법상 군주국 형태의 금지와 선출된 국가원수의 존재를 의미한다.
이에 비하여 2019년 8월 개정된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은 제1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은 전체조선인민의 리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국가”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사회주의국가는 소위 ‘사회정치적생명체론’에 따라 수령, 당, 인민대중이 삼위일체가 되는 우리식 사회주의 국가를 말하며, 이는 ‘수령(또는 지도자)의 유일적 영도체제’를 채택한 국가를 가리킨다. 요컨대, 남북한 간 국가형태상의 차이는 ‘민주공화제’와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제’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남북한은 국가이념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를 노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의 국가이념(國基 혹은 國是)은 ‘자유민주주의’이다. 그러나 북한은 “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국가건설과 활동의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제3조).” 김일성-김정일주의란 곧 ‘사람중심의 세계관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사상’이라고 주장되는 주체사상을 가리킨다. 아울러 북한 헌법은 국가목표 내지 국가기본정책으로 사회주의의 완전한 이룩(제9조)을 명시하고 있다.
셋째, 남북한은 주권자를 달리 규정한다. 한국의 헌법은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한국 헌법 제1조 제2항)하면서, 국민주권주의의 원칙(주권재민의 사상 및 원리)을 선언하고 있다. 여기서 국민이라 함은 이념적 통일체로서의 전체 국민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주권주의 원칙 아래에서는 전체 국민의 의사만이 국가권력을 정당화시킨다.
반면에 북한의 헌법은 “주권은 로동자, 농민, 군인, 지식인을 비롯한 근로인민에게 있다. 따라서 이 4가지 부류의 근로인민 이외의 자는 주권자에서 제외된다. 근로인민은 자기의 대표기관인 최고인민회의와 지방 각급인민회의를 통하여 주권을 행사한다”고 규정(북한 헌법 제4조)함으로써 (근로)인민주권주의를 선언하고 있다. 요컨대, 주권의 귀속주체(주권자)는 남북한의 헌법상으로 국민주권주의와 인민주권주의로 구별된다.
넷째, 남북한은 주권행사 방법에 있어서 중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국 헌법은 간접민주정치 혹은 대의민주주의를 국정운영의 기본 혹은 정치활동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다(한국 헌법 제40조, 제66조, 제101조). 국민은 그들의 주권을 원칙적으로 선거를 통하여 행사하되(제41조), 예외적으로 국민투표(제72조)를 통해서도 할 수 있다. 즉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선출하며, 국가의 중요정책에 대하여는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그러나 북한은 사회주의헌법 제12조와 조선로동당규약에서 인민민주주의독재 혹은 프롤레타리아독재를 강화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조선로동당의 영도’를 국정운영의 기본원리로 정하고 있고(북한 헌법 제11조), ‘로농동맹’에 기초한 전체인민의 정치사상적 통일을 강조한다. 요컨대, 남북한 간의 정치이념과 제도상의 차이는 대의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독재(또는 조선로동당의 영도)로 귀결된다.
다섯째, 남북한은 국정운영의 기본원리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남한의 국정운영은 엄격한 권력분립 원칙(한국 헌법 제40조, 제66조, 제101조)에 입각해 있고,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확보하기 위하여 국가권력 상호간에 상호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도입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북한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국가권력기관 상호간의 권력분립 원칙을 배제하고 있다. 그 대신 국가기관의 구성원리로써 북한은 민주적 중앙집권제(북한 헌법 제5조) 혹은 권력통합의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최고인민회의(제87조), 내각(제123조)과 중앙재판소(제159조)가 각각 입법기관, 행정기관 및 사법기관으로 분리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는 명의상뿐이다. 실제로는 모든 권력이 ‘국무위원회 위원장이자 조선로동당 제1위원장’인 김정은 한 사람에게 귀속되어 있는 권력통합형 내지 권력집중형 국정운영이 이루어지고 있다. 결국 남한은 권력분립주의를, 그리고 북한은 권력집중주의를 채택하고 있다고 하겠다.
여섯째, 남북한은 헌법과 국가 간, 그리고 국가와 정당 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남한의 경우, 헌법이 국가․사회 위에 위치하며, 모든 국가활동을 규율하고 있다. 정당은 권력을 잉태하는 원천이 될 수는 있지만, 국가나 헌법 위에 있을 수는 없다. 위헌정당은 헌법재판소에 의한 해산결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는 입헌주의와 헌법보장 제도의 당연한 결과이다.
그에 반해 북한에서는 당이 프롤레타리아의 중심체로서 모든 권력의 원천이 된다. 따라서 당은 국가 위에 존재하며, 국가를 영도하는 체제로 되어 있다. 이와 관련, 전술한 북한 헌법 제11조는 당 우위의 국가체제를 제도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당과 국가 지도층의 인적 통합이 두드러지며, 당조직을 통한 국가활동의 장악도 주요한 특징의 하나로 나타난다.
일곱째, 남한의 정부형태는 서구민주주의 정부형태의 하나인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인 동시에 행정권의 수반이다. 이에 비하여 북한은 1992년 사회주의헌법에서는 주석형 정부형태에 입각한 전체주의적 독재체제를 채택했다가, 1998년 9월 사회주의헌법을 개정한 후에는 국방위원장체제를 운영하였고, 2016년 6월 새로이 국무위원장체제를 도입하였다.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무력총사령관으로서 국가의 일체 무력을 지휘통솔한다(북한 헌법 제103조). 이로써 북한은 군사국가(군국주의체제)로서의 위상을 갖게 된다.
국무위원장은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령도자’로서 입법․행정․사법의 모든 권력을 행사한다(북한 헌법 제100조, 제103-105조). 국무위원장체제는 김정은이 조선로동당의 ‘위원장’으로 존재하고 활동함에 따라 노동당 일당독재체제와 불가분의 일체를 형성하고 있다. 결국 남북한의 정부형태는 대통령제 정부형태와 ‘국무위원장 영도 하 일당독재의 정부형태’로 구별된다고 하겠다.
여덟째, 남북한의 헌법은 정당제도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국 헌법은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한국 헌법 제8조)고 규정하여 복수정당제와 아울러 정당의 설립과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반면에 북한의 신헌법은 “공민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국가는 민주주의적 정당, 사회단체의 자유로운 활동조건을 보장한다”(북한 헌법 제67조)고 규정하여 외형상 복수정당제와 정당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고 있다. 현재 북한에는 조선로동당 외에 조선사회민주당, 천도교청우당 등의 정당이 존재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선로동당 이외의 정당은 독자적인 정당이라기보다는 위성정당 내지 외곽단체의 구실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정당제도는 이른바 ‘사회주의적 다당제’에 입각해 있다고 하겠다. 요컨대, 남북한의 정당제도는 복수정당제와 사회주의적 다당제로 서로 구별된다.






<표 1> 남북한의 국가이념 및 기본질서 비교

아홉째, 남한에서는 지방자치제도가 헌법상의 기본원칙으로 채용되어 있다(한국 헌법 제117조). 이른바 ‘풀뿌리 민주주의’의 구현을 위해서이다. 그러나 북한은 전술한 바와 같이 국가조직의 중심원리로서 ‘민주적(사회주의적) 중앙집권제’를 채택함으로써 일찍부터 지방자치가 존재할 여지를 없애버렸다. 최근 북한경제가 어려워짐에 따라 지방단위에 상당한 자율권을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그것이 자방자치제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서 ‘민주적 중앙집권제’는 중앙정부의 권력통합원리로 기능할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제도의 불인정 원리로도 작동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요컨대, 남북한은 지방자치제를 인정하느냐 여부에 따라 중대한 차이를 보인다고 하겠다.
열째, 남한의 헌법은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되, 경제 민주화를 위해 일정한 범위 내에서 국가의 개입과 규제를 허용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한국 헌법 제119조). 이는 자본주의경제질서를 근간으로 하면서, 그로 인한 문제점을 수정․보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북한 헌법은 그들의 경제질서가 ‘사회주의적 생산관계’와 ‘자립적 민족경제의 토대’에 입각(북한 헌법 제19조)하고 있고, “생산수단은 국가와 사회협동단체만이 소유한다”(제20조)고 규정함으로써 생산수단의 국․공유화에 기초한 사회주의계획경제질서를 선언하고 있다. 즉 남북한의 경제질서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와 중앙통제식 사회주의계획경제질서로 구별된다고 하겠다.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가 실시된 이래 장마당 활성화, 매대(買臺)의 등장 등 시장의 요소가 부분적으로 도입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아직까지 중국식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라고 부를 정도에는 미치지 못한다.

3. 남북한 주민의 기본권(인권) 비교

기본권이라 함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말한다.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기본권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기본권은 본래 국가의 자의적인 권력행사를 제한하고, 침해행위에 대한 국민의 방어권을 확보하려는 데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그 동안 기본권의 기능은 더욱 확대되어 왔다. 한국 헌법에 있어서 기본권은 주관적 공권의 측면 외에 객관적 법질서로 기능하기도 하며, 나아가 부분적으로는 제도적 보장으로서 작동하기로 한다.
한국 헌법에서는 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존중 및 행복추구권(제10조), ② 평등권(제11조), ③ 자유권(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직업선택의 자유, 주거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통신의 자유 및 불가침, 양심․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 ④ 참정권(선거권, 피선거권, 공무담임권), ⑤ 청구권(청원권, 재판청구권, 형사보상청구권, 국가배상청구권 등), ⑥ 생존권(교육을 받을 권리,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환경권 등, ⑦ 열거되지 아니한 기본권의 존중(제37조 제1항)을 명시하고 있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제10조 제2문). 위에서 열거한 기본권은 국가와 국민간에 효력(대 국가적 효력)을 가질 뿐 아니라, 사인간의 법률행위를 구속하는 대사인적 효력을 갖는다.
한편 한국 헌법은 6대 기본적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그것은 ① 교육의 의무(제31조 제2항), ② 근로의 의무(제32조 제2항), ③ 납세의 의무(제38조), ④ 국방의 의무(제39조), ⑤ 재산권 행사의 공공복리 적합의무(제23조 제2항), ⑥ 환경보전의무(제35조 제1항 후단)이다.
반면 북한에서 기본권(공민의 권리)은 주체사상에 의해 지도되고 있고,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와 전체주의를 기초로 하여 성립되는 개념이다(북한 헌법 제63조). 즉 북한식 기본권은 인간의 존엄성과 같은 개인주의적인 가치관에 입각한 인권개념, 혹은 천부인권사상에 기초한 자연권과는 친하지 않은 것이다. 북한 당국이 이와 같은 전체주의적 인권관을 ‘우리식 인권’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북한 헌법에서는 평등권, 자유권, 생존권, 참정권, 청구권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으며 일응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의 기본권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기본권의 목록을 보면, 평등권 및 남녀 평등(제65조, 제77조 제1항), 선거권․피선거권(헌법 제66조), 언론․출판․집회․시위와 결사의 자유(제67조), 신앙의 자유(제68조), 신소와 청원권(제69조), 직업선택의 자유(제70조 제2항), 과학과 문학예술 활동의 자유, 저작권․발명권․특허권의 보호(제74조), 거주 및 여행의 자유(제75조), 인신과 주택의 불가침, 서신의 비밀 보장(제79조 제1항), 법에 근거하지 않은 구속․체포․수색의 금지(제79조 제2항), 노동의 권리(제70조), 휴식의 권리(제71조), 무상치료를 받을 권리와 의료시설․국가사회보험과 사회보장제에 따른 보호를 받을 권리(제72조), 교육을 받을 권리(제73조), 어머니의 어린이의 특별 보호(제77조), 결혼과 가정을 보호받을 권리(제78조), 혁명투사․혁명열사가족․애국열사가족․인민군후방가족․영예군인의 특별한 보호(제76조), 개인소유권 및 상속권의 보장(제24조 4항), 망명자의 보호(제80조) 등을 규정하고 있다.
북한 공민의 기본적 의무에는 ① 인민의 정치사상적 통일과 단결을 견결히 수호해야 할 의무(제81조), ② 국가의 법과 사회주의적 생활규범을 준수해야 할 의무(제82조), ③ 노동의 의무, 특히 노동규율과 노동시간 준수의무(제83조), ④ 국가재산과 사회협동단체재산을 아끼고 사랑하며 온갖 탐오․낭비현상을 반대․투쟁해야 할 의무(제84조), ⑤ 혁명적 경각성을 높이며 국가의 안전을 위하여 몸바쳐 투쟁해야 할 의무(제85조), ⑥ 조국보위 및 군대복무의무(제86조)가 있다.
위에서 살펴 본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전반적으로 한국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이 보다 더 구체성을 띠고 있는데 비하여, 북한 헌법상의 기본권은 일반적․추상적이다. 또한 하위법률이 제정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있어 현실적인 규범력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공산이 크다. 한국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 중에서 북한 헌법에 없는 것으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인간존엄권), 행복추구권, 양심․사상의 자유, 형사보상청구권, 국가배상청구권, 범죄피해에 대한 구조를 받을 권리,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인간다운 생활권, 환경권과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 헌법에 열거되지 않은 권리(생명권 등)의 존중을 들 수 있다.
이 중 헌법에 열거되지 않은 기본권의 존중은 기본권의 자연권성, 전국가성을 의미하는 것이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은 성질상 사회주의계획경제질서에서 인정되기 어려운 것들이다. 한편 북한 헌법에서는 청구권적 기본권 개념이 취약한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환경 보호는 국가의 의무사항(개인의 기본권이 아니라)으로 되어 있다.
기본적 의무와 관련해서는 근로의 의무와 국방의 의무는 남북 공통의 의무이지만, 나머지 의무는 각자의 헌법에만 특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4. 남북한의 통치구조 비교: 사법부를 중심으로

남북한의 사법기구는 그 위상이 매우 상이하다. 남한은 3권 분립의 정신에 따라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사법부의 독립을 유지․지향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법부가 행정부나 입법부의 하부기관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의 사법기구는 당의 정책을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최고인민회의의 사법담당 파견대’(검찰기관은 행정부의 1개 부서)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데 불과하다. 즉, 북한에서의 사법은 당과 국가의 사법정책을 집행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무기로 기능하며, 사회주의헌법에서는 그 임무로서 계급적 원수들과의 투쟁을 규정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법이란 당의 노선과 정책을 법률적 형식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재판소가 재판활동을 법에 철저히 의거하여 수행한다고 하는 것은 재판소가 당의 노선과 정책에 충실히 따라서 재판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사법권의 독립이 허구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남한의 사법기관 ‘체계’는 대법원, 고등법원, 지방법원의 3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3심제를 원칙으로 한다. 이밖에 군사법원을 두고, 별도로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판하는 헌법재판소를 두고 있다. 북한의 경우 남한과 비슷하게 3급으로 중앙에 중앙재판소, 도(직할시)에 도재판소, 시(구역)․군에 2∼3개 시․군을 단위로 인민재판소가 설치돼 있다. 북한은 우리와 달리 2심제를 원칙으로 한다. 그리고 군사재판소와 같은 특별재판소를 두고 있다.
인사에 있어 남한의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며, 임기는 6년으로 중임할 수 없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며, 임기 6년으로 연임할 수 있다. 그리고 일반법관은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하며, 임기 10년으로 연임할 수 있다.
남북한의 통치구조 중에서 내각과 입법부에 대한 자세한 비교는 생략하고 <표 2>로 대체하기로 한다.

<표 2> 남북한의 헌법 비교표(종합)




북한의 중앙재판소장은 최고인민회의에서 선거하며 임기는 5년이다(북한 헌법 제91조 제12호 및 제160조 제1항). 각급 재판소는 판사 및 인민참심원으로 구성되며(제163조 제1항), 그 임기는 해당 인민회의의 임기와 같다(제160조 제2항). 예외적으로 특별재판소는 중앙재판소에서 임명하는 소장과 판사, 그리고 군무자 회의 또는 종업원회의에서 선출되는 인민참심원으로 구성된다(제161조).
재판에 있어서는 남한의 경우 3심제를 원칙으로 하며,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 북한의 경우 2심제를 원칙으로 하나, 통상 단심으로 끝난다. 재판에는 판사 1명과 인민참심원 2명이 참여하되, 특별한 경우에는 판사 3명으로 재판한다(제163조). 그리고 북한의 모든 재판업무는 당과 최고인민회의의 지도를 받는 중앙재판소의 감독하에 수행되고 있어(정권기관의 재판 개입 여지 존재), 재판의 독립성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어 있지 못하다.
한편 남한에서는 헌법의 최고규범성을 보장하고 입헌주의와 법치주의를 담보하는 헌법재판제도를 운용하고 있으며, 이에 관한 법적 근거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헌법재판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헌법의 최고법규성을 보장하는 데 미흡한 제도적 결함이요 한계라고 할 수 있다.

Ⅲ. 남북한 헌법통합을 위한 북한 헌법 개혁방향

1. 남북한 헌법의 종합적 평가

위에서 개략적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남한은 정치적으로는 개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즉 사적 소유에 기초를 둔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 결과 남한에서는 자유와 사적 소유(사유재산권의 보장)를 최대한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체계가 확립되어 있다. 남한의 경우 주권은 정치적․이념적 통일체로서의 전체국민에게 있으며, 국민주권의 실현을 위한 방법으로 대의제(간접민주정치)를 원칙으로 채택하고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국민(주권행사자 내지 국가기관으로서의 국민)은 국민투표에 의해 직접 주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 남한은 권력분립의 원칙, 입헌주의와 법치주의를 채택하여 국가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는 한편,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남한에서는 법을 인권의 존중․보호 및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가치를 갖는 가치체계로 인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북한은 정치적으로는 집단주의와 우리식 사회주의,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사회적 소유(국가 및 협동단체소유)에 기반을 둔 중앙통제식 계획경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프롤레타리아독재 원칙하에 주권이 노동자․농민․군인․지식인을 비롯한 모든 근로인민에게 있다고 명시하고 있어, 주권자의 범위를 계급적 인민 내지 무산(無産)계급으로 국한하고 있다. 또한 공민의 의무가 지나치게 많아 반입헌주의적․인권억압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사회주의헌법에서 노동당의 초헌법적 지위를 명문화하고 있다. 이는 북한 법제도의 입헌주의성을 훼손하고 있다. 북한에서 법이란 소위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위한 무기로서 맑스레닌주의 국가이론과 법이론에 준거하여 당규약 및 수령(노동당 총비서, 위원장)의 교시의 최고규범성 및 헌법우위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있다. 그리고 재판은 당의 사법정책에 충실하게 복무하는 수단에 불과하여 법과 재판의 독자성이 철저하게 부정되고 있다. 요컨대, 북한에서는 법이 정치의 시녀로서 사회주의적 계급독재체제 유지를 위하여 존재하는 도구적 성격이 강하다.
이와 같이 현재 남북한의 헌법체계는 현상형태 면에서 너무나 이질화되어 있어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상극적․대립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통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남북한 헌법의 이질성과 동질성을 발견하는 한편,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하나의 통일헌법으로 동화․수렴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2. 남북한의 헌법통합 방향 및 고려사항

남북한의 헌법통합은 통일의 유형에 따라 다소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통일 유형과는 무관하게 우리가 항시 견지해야 할- 혹은 포기해서는 안 될- 원칙이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 헌법 제4조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 곧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의 대북한 확산을 의미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통일헌법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채용해야 할 가치와 제도는 자유민주주의와 대의제(의회민주주의), 정치적 다원주의와 복수정당제, 시장경제질서와 사유재산제도, 기본권 존중주의, 복지주의에 근거한 사회복지제도의 확충, 국제평화주의 등이 그것들이다.
이 밖에도 남북한 헌법통합의 과정에서 특별히 고려해야 할 사항을 추가적으로 지적하면, 다음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통일한국의 헌법질서는 ‘인간존중주의’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통일한국이 국민(특히 북한 주민)의 인간성을 존중․발양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구현’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통일한국의 헌법은 한마디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존중, 개개인의 인격발현을 보장하는 법질서이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존중주의’는 위에서 적시한 자유민주주의, 실질적 법치주의, 시장경제질서, 복지국가주의, 다원주의와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남북한의 헌법통합은 자유민주주의와 법치국가질서에 입각해서 추진되어야 한다.
더불어 중앙적 권력의 지나친 집중과 비대화를 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엄격한 권력분립의 원칙이 확립되어야 한다. 권력분립은 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는 외에 기본적 인권의 보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원칙이라는 점에서 통일국가의 권력구조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둘째, 북한주민의 대거 월남에 따른 주택 부족, 실업사태, 범죄 증가, 과중한 사회보장문제 발생과 같은 후유증을 줄이기 위해 일시적으로 군사분계선 통과의 규제 등 남북한 간에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헌법에서 이를 가능케 하는 특별조항을 설치해야 한다. 그럴 경우 이에 근거하여 가칭 ‘남북한 주민의 군사분계선 통과에 관한 특별조치법’ 같은 특별법을 한시적으로 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북한정권 하에서 불법몰수된 토지의 원소유자 반환여부에 관해서는 일부 실향민들의 반환에 대한 애착, 재산권 보장의 관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훨씬 더 많은 북한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할뿐더러, 북한지역 투자 유치를 통한 신속한 북한경제 재건과 남북한 경제통합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한주민의 삶의 터전과 생존권을 보장하고 북한경제 재건을 우선적인 국가목표로 설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 경우 북한지역 내의 토지․건물에 대한 실향민의 사유재산권 보장(반환 또는 보상) 요구에 대해서는 적절한 제한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통일헌법에서는 재산권 보호 및 행사에 대한 예외 내지 특칙을 명기하고, 그에 근거하여 가칭 ‘북한지역 국유재산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등을 한시법으로 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넷째, ‘풀뿌리 민주주의’의 구현인 지방자치제도가 확립되고 안정적으로 실시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지방자치는 지방화․세계화라는 국제적 추세에 부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남북한 통합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 남북한의 정치․경제․사회적 차이가 클 경우 중앙정부 차원에서 인위적인 통합을 추진하려 하기 보다는 지방적 특수성을 인정하는 것이 실질적 통합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지방자치제도를 완충적 장치로 사용하여 북한지역의 독자성을 헌법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남북한의 통합을 진전시키는 전략을 구사함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다만 지방자치제도를 일시에 전면적으로 북한지역에 이식하려 할 경우 오히려 이것이 통일의 원심력(남북통합에 역행)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단계적인 제도 정착방안을 마련해서 신중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선거제도의 경우, 북한의 각급 인민회의 대의원선거법을 폐지하고 남한의 각종 선거관련 법령을 북한지역에 적용하는 방향에서 통합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북한에서는 아직 민주적인 선거제도가 정착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선거구 조정이나 북한정당에 대한 국고지원 등에 있어서 특별한 배려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3. 북한 헌법의 개혁방향

남북한의 순조로운 체제통합을 위해서는 통일 이전에 북한이 스스로 자신의 헌법을 개혁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이는 상당한 정도의 북한 인권 개선과 민주화의 진행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런 전제를 밑바탕에 깔고 북한의 헌법 개혁방향을 제시하기로 한다. 사실 북한이 민주화 내지 체제전환의 과정에 본격적으로 진입할 경우 북한 헌법은 거의 모든 부분을 손질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지면 관계상 이를 다 기술할 수는 없다. 위에서 필자가 남북한 헌법통합의 방향을 개략적으로 제시한 만큼, 가능한 한 중복을 피하면서 시급하게 요구되는 북한 헌법의 개혁방향을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을 중심으로 기술하기로 하겠다.
첫째, 김일성 가계의 우상화 및 핵보유국 선언 등을 천명한 북한 헌법의 서문은 전면 삭제해야 한다. 지도자 숭배와 우상화는 봉건적인 폐습으로 자유민주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무계급의 평등’을 주창하는 사회주의의 본질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또 핵보유국은 핵비확산을 추구하는 국제사회의 기본규범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북한의 개방과 발전에 역행하는 것이므로 삭제해야 마땅하다.
둘째, 북한의 사회주의국가(제1조)이자 혁명국가(제2조)라는 정체성을 바꾸어야 한다. 오늘날 절대다수의 국가들이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이념 내지 체제가치로 선택하고 있다. 이것이 역사의 보편적 발전방향과 부합하기 때문이다. 반면 사회주의를 채택하는 나라는 중국과 베트남 등 몇 나라 되지 않는다. 북한이 동유럽의 체제전환 국가들처럼 민주화와 개방화의 길을 걸을 경우 당연히 ‘자주적(=폐쇄적) 사회주의국가’이자 ‘혁명국가’라는 정체성을 포기하고 개방적인 자유민주국가로 변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셋째, 북한 헌법 제3조는 국가운영의 지도지침(기본지침)과 관련해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국가건설과 활동의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일성-김정일주의는 곧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을 가리킨다.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은 대를 이은 1인 수령독재체제, 유일사상체제, 선군정치노선 등을 뒷받침하는 것들이다. 이들이 북한의 발전과 번영은 물론, 남북한 통합에 전혀 맞지 않는 이념이요 사상이다. 따라서 당연히 폐기되어야 한다.
넷째, 북한의 주권은 로동자, 농민, 군인, 지식인을 비롯한 근로인민에게 있다(북한 헌법 제4조). 즉 인민주권론을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지주, 자본가, 종교인, 월남자 가족 등 계급적 인민이 아닌 자는 주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인민주권론 내지 계급주권론은 프롤레타리아독재 및 정치범수용소의 모태가 되고 있다. 이는 보편적 인권론, 만민평등사상에 배치된다. 따라서 북한의 주권은 모든 국민에게 있다고 수정되어야 한다.
다섯째, 북한에서는 모든 국가활동이 노동계급의 영도 및 정치사상적 통일에 의거해, 조선로동당의 영도 밑에 이루어져야 한다(북한 헌법 제10-11조). 국가 위에 초헌법적 당이 위치해서는 자유국가, 법치국가가 성립될 수 없고, 또한 ‘헌법의 지배’가 실현될 수 없다. 따라서 ‘조선로동당의 영도’라는 표현은 삭제해야 한다.
여섯째, 북한은 국가기관의 운영원칙으로 민주적 중앙집권제(북한 헌법 제5조) 내지 권력통합의 원칙을, 국가활동의 기본노선으로 계급노선과 군중노선(북한 헌법 제12-13조),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을 비롯한 대중운동 고취 입장을 견지․장려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널리 일반화되어 있는 권력분산의 흐름, 시민사회의 영역 존중 등 보편적 가치와 역사적 발전방향과 맞지 않는 것으로 폐기 또는 대폭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곱째, 사회주의적 생산관계와 자립적 민족경제의 토대(북한 헌법 제19조)는 오늘날 북한을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주된 원인이 되었다. 따라서 이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개혁․개방 및 대외협력의 토대’로 수정함이 타당하다. 이에 따라 주요 생산수단의 국․공유화를 명기한 북한 헌법 제21조와 제22조를 개정하는 한편, 제24조에 명기된 개인소유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여야 한다.
여덟째, 북한 헌법 제63조는 “공민의 권리와 의무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원칙에 기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집단주의는 오히려 공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근거로 작동하고 있고, 북한이 의무 본위의 가치체계가 지배하는 사회로 만드는 현상을 초래하였다. 따라서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원칙’을 삭제하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존중으로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아홉째, 공민의 권리와 관련해서는 사상․양심의 자유를 명시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북한 헌법은 여러 조항에서 정치사상적 통일(북한 헌법 제10조, 제81조), 사상혁명(제10조), 사상예술성(제52조), 정치사상적으로 무장(제60조) 등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사상․양심의 자유를 부정하는 동시에, 오로지 김일성 주체사상이라는 유일사상으로 북한 주민을 옥죄는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사상의 해방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정치적 다원주의와 기본적인 인권 보장이 실현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북한이 참된 민주화와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갈 수도 없다. 가장 중요한 인권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추가한다면, 북한 주민의 고귀한 생명이 파리 목숨처럼 가볍게 취급 받는 엄중한 현실을 고려할 때 헌법을 개혁하여 생명권을 명시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생각된다.
열째, 북한에서 정당은 사실상 조선로동당 밖에 없고 나머지 정당들은 조선로동당의 위성정당에 불과하다. “국가는 민주주의적 정당, 사회단체의 자유로운 활동조건을 보장한다”고 명시한 북한 헌법 제67조 제2항은 외형상 다당제인 것처럼 보이도록 한 장식적 규정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기존의 규정을 삭제하고 그 대신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다. 정당의 활동은 헌법에 의하여 제도적으로 보장된다.”라는 규정을 신설하여 실질적으로 복수정당제를 보장하여야 한다.
열한째, 북한 헌법은 권력분립이 아닌 권력통합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고, 또한 모든 권력이 조선로동당(형식적으로는 조선로동당의 지도를 받는 최고인민회의)에 집중되어 있다. 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독재가 행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권력을 분산시키고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국가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는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주요 국가기관장을 최고인민회의에서 선거하거나 소환하는 규정(헌법 제91조 제5,7,9,10,11,12,17호)을 모두 삭제하여야 한다.
열두째, 국무위원장은 무력총사령관으로서 국가의 일체 무력을 지휘통솔한다는 북한 헌법 제103조의 규정은 일반적인 국군통수권자의 지위를 넘어서서 그를 통해 군사국가화 내지 군국주의로 흐르는 단초를 제공하는 매우 위험한 조항이다. 이 같은 현상은 이미 북한 헌법 제60조의 ‘자위적 군사노선(4대 군사노선)’과 결합되어 1960년대 이후부터 가시화되어 왔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열셋째, 북한에서 사법권의 독립(인사의 독립과 재판의 독립을 포함)이 보장되고 있지 못함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이는 필연적으로 사법의 정치화 및 당 예속화를 초래하는 요인이 된다. 이를 제도적으로 봉쇄하기 위해서는 최고인민회의에서 중앙재판소장과 중앙재판소 판사의 선거 및 소환(북한 헌법 제91조 제12호 및 제116조 제12호)과 지방재판소 판사의 선거 및 소환(북한 헌법 제140조 제5호)에 관한 규정을 삭제하고 조선로동당, 최고인민회의, 국무위원회, 내각 등 당기구와 국가기관과 구별되는 별도의 사법체계를 구축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북한 주민의 인권 보장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당의 사법 파견원에 불과한 인민참심원 제도(북한 헌법 제160조 제12호, 제140조 제5호 및 제163조) 역시 폐지하거나 또는 서구식 배심원 제도로 개편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북한 헌법 제162조 제2항은 “모든 기관, 기업소, 단체와 공민들이 국가의 법을 정확히 지키고 계급적원쑤들과 온갖 법위반자들을 반대하여 적극 투쟁하도록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같은 준법감시나 계급적 원수에 대한 투쟁은 재판소 본연의 업무와 무관한 것이다. 재판소가 이 같은 사업에서 손을 떼도록 헌법을 개혁해야 할 것이다.
열넷째, 북한의 중앙검찰소 및 지방검찰소도 개혁의 대상이다. 검찰소는 준사법기관으로 그 활동은 조선로동당, 국무위원회, 내각과 최고인민회의 등 외부 권력기관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검찰권의 정치권력 예속화는 불을 보듯 명약관화한 현상이다. 따라서 헌법을 개정하여 재판소의 경우처럼 최고인민회의와 지방인민회의의 인사 개입을 봉쇄하는 한편, “중앙검찰소는 자기 사업에 대하여 최고인민회의와 그 휴회중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앞에 책임진다(북한 헌법 제158조)”는 규정을 삭제하여야 한다.
열다섯째, 이 밖에도 정권 주도의 인민적․혁명적 문화 건설(제41조), 사회주의적 생활양식의 전면적 확립(제42조), 인민을 위하여 투쟁하는 참다운 애국자로, 지덕체를 갖춘 사회주의건설의 역군 양성(제43조) 등의 규정은 오늘날의 세계사적 흐름과 시대적 추세에 맞지 않는 국가주의적․집단주의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민족고유의 것에 맞는 문화 창달, 자유와 창의, 개방과 포용에 입각한 생활양식의 확산, 자아 실현을 통해 국가발전에도 이바지하는 전인격적 존재의 양성 등 개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할 것이다.

Ⅳ. 결어

남북한은 오랜 분단기간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를 유지해 왔다. 이 같은 상극적인 이념과 체제는 남북한 각자의 헌법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로 나가기 위해서는 체제적 이질성을 담고 있는 남북한의 헌법을 하나의 헌법적 틀 내에 부어 담고 이를 발전적으로 용해시키는 변증법적 지양의 태도가 요구된다. 물론 이 때에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대의정치제도와 복수정당제, 사유재산제도의 인정 및 내실화를 전제로 하는 대한민국의 헌법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사실 남북한 헌법의 통합은 정치적 통일의 핵심이자 완결판으로서 남북한 정치지도자들과 양측 주민의 의사가 하나로 결집되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리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공통된 남북한 헌법 통합 방향을 설정하더라도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너무나 험난하다. 그 과정에서 북한이 스스로 민주화를 진행하여야 하고, 그들의 헌법을 자체적으로 계속해서 개혁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이 점을 감안해서 본고에서는 남북한의 헌법을 비교 고찰한 다음, 남북한 헌법 통합 및 북한의 헌법 개혁 방향을 제시해 보았다. 열다섯 가지로 정리하여 제시한 북한 헌법 개혁방향(이는 핵심적인 내용의 일부에 불과하다)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이 또한 순차적․단계적으로 실시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방향성을 정립하고 그의 실현을 위해 지혜를 모으고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가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본고에서 시도한 남북한 헌법 비교 및 북한 헌법 개혁 방향의 모색은 매우 유의미하다고 하겠다. 일반적이고 총론적인 검토에 그친 감이 없지 않지만, 향후 이 분야의 후속적 연구에 있어 하나의 길잡이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헌법은 남북한 주민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 할 새로운 ‘민족공동체’를 제도적으로 담아내는 국가 최고의 법규범적 그릇이다. 그래서 적당히 노력해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북한 헌법에 대한 심층적 비교 및 성찰과 또 각자가 헌법체제 하에서 겪은 70여 년 동안의 헌정사에 대한 통찰과 극복 자세가 무엇보다도 긴요하다. 이러한 과업은 이와 같이 짧은 소논문으로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남북한의 헌법 통일과 북한 헌법의 개혁 방향을 모색할 경우, 남북한 헌법규정의 비교 및 헌법현실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포함해서 보다 심층적이고 학제적 및 경험적인 연구가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그런 연구의 과정에서 학문적 논란 및 시행착오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 및 적절한 대응의 필요성을 지적하면서, 필자의 북한 헌법 스케치를 맺기로 하겠다. 남북한 헌법 통합의 일환(혹은 그 과정의 일부)으로서 북한 헌법의 개혁 문제에 대해 향후 전문가 그룹과 북한 인권단체 등 시민단체의 관심과 적극적인 역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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