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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000년대 중국 식 개혁 개방 갈 번 했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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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01-30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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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000년대 중국 식 개혁 개방 갈 번 했던 기회

아마 장성택이 김정은을 제거 즉
등소평이 화국평을 밀어낸 것처럼 되었다면 개혁개방의 길에 들어섰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모택동이 죽은 상태의 중국 상황과 북한은 달랐다.
오히려 1966년 문화대혁명으로 개혁 세력을 반격한 모택동 시대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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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남한을 방문한 장성택과 박남기 국가 계획 위원회 위원장이다.
박남기 위원장은 대표단 단장이었지만 실세는 장성택이었다.
남조선 시찰 시 이것저것 물어보는 박남기를 질책할 만큼 장성택이었다.
장성택은 호텔에서 취해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남한 발전 상에 부러움과 질투심에 화가 날 정도였다.
다 붕괴된 소련과 공산권 속에 속하는 북한과
반면 미리 개방한 중국의 발전 상을 그는 잘 보고 있었다.
그 발전하는 중국이 모델로 삼는 나라가 남조선인데
실제 와보니 기가 막히게 발전한 모습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남조선 갔다 온 즉시 김정일에 실각되었다가 차후에 시도하였다.
그것이 바로 중국 곁의 신의주 특구인 것이다.
하지만 김 부자 정권의 특성 상 개방은 곧 죽음이기에
박남기도 장성택도 결국에 제거 대상이었다.
1992년 남한을 방문했던 김달현 부총리 역시 제거된 전적이 있다.
아무튼 남조선 왔다 간 인사들은 다 속은 변절자로 보고 제거하는 것이다.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에 대한 변호]
경제를 일으키자면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돈은 시중(이른 바 주민 경제)에 있었다.
그만큼 국가는 시중이란 물 위에 기름처럼 떠있었다.
따라서 시중 돈을 강탈할 수밖에 없었다.
김정일 시대에 세 번째 강행된 화페 개혁인 것 이다.
이건 북한 같은 독재 국가에서나 가능하다.
또 이걸 김정일 모르게 절대 할 수 없다.
차후 정권 유지에 위협일 될 만큼 민심이 하늘을 치솟자
돌변하여 박남기에게 모든 죄를 씌워 처형하였다.
이건 공산절대권력내에서 흔히 있는 일화 중에 하나이다.

(사)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장 이민복(선교사)

010-5543 2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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