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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인질로 잡힌 조총련 간부 자녀들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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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01-30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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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에 인질로 잡힌 조총련 간부 자녀들의 운명 

지난 달 28일 북한은 일본의 조총련 25차 전체대회에 김정은의 명의로 된 서한을 보냈다. 말이 서한이지 북한 독재자가 보내는 교지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조총련중앙으로부터 도도부현의 조총련조직들과 또 조총련동포들이 이 서한을 달달 외우게 하고, 내용을 새기는 각종 형식의 학습을 강요할 것이다. 게다가 서한에서 제시된 과업을 놓고 동포들의 사상을 검증하고 이들의 충성심을 평가할 것이다. 오히려 북한내부에서보다 조총련이 더욱 강한 규율과 사상 검증 속에 산다는 말을 북한에서 들은바 있다. 

이번 서한에서 김정은은 현시기 총련의 기본임무는 각계각층 동포군중의 힘을 하나로 모아 재일조선인운동의 새로운 전성기, 총련부흥의 새시대를 더욱 힘차게 열어나갈 것을 종용하였다. 또한 김정은은 총련에서는 애국애족으로 불타는 광범한 동포군중의 무궁한 힘을 유일무이한 원동력으로 하여 총련부흥의 새 시대를 승리적으로 열어나가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나는 김정은의 서한을 읽어보면서 세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개인의 행복과 이상실현을 지향하고 있고 또 현실화되고 오늘날 까자도 북한주민들에게 80년 가까이 강요하고 있는 가장 혹독하고 숨 막이는 전체주의적 노예의 삶을 재일동포들에게도 내려먹이고 있는지 의분과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 

그리고 왜 조총련 동포들은 지구촌의 가장 발전된 자유롭고 풍요로운 자본주의국가에서 삶을 영위하면서도 정신과 넋은 완전히 북한에 헌납하고 살아야 하는가? 조총련동포들이 오늘날까지도 이렇게 북한의 꼬봉이가 되어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김정은의 조총련에 보낸 서한에 내가 분노하는 것은 북한에서 45년간 살면서 북한에서 살고 있는 많은 재일귀국자들과 깊은 연을 맺고 살다보니  그들이 들려주는 개인사와 마음속 상처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목격한 바로는 북한과 조총련의 선전과는 달리, 재일동포 귀국자들은 북한에 도착한 첫 날부터 이질적 존재. ‘자본주의 물을 먹은 믿을 수 없는 이단아“로 취급되었고 성분규정도 동요계층으로 분류되었고 언행에서 문제가 일으키거나 과거행적이 분명치 않은 귀국자들은 적대계층으로 규정되기도 하였다. 암암리가 아닌 대놓고 차별과 감시가 존재하고 사회적 진출에 많은 제약이 따르는 신분이다. 결국 재일 귀국자들은 남들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충성심을 보여도 하급 기능직 공무원 이상의 직책은 바라 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북한에서 직접 체험했던 생생한 증거를 가지고 재일 귀국동포들이 북한에서 어떤 삶을 강요당했는지 사실적으로 이야기 하려고 한다.

 내가 북한의 함경남도 함흥에서 중학교 3학년으로 진학했던 1994년 경에 우리 학급에는 조총련 간부자녀들이라고 소개한 3명의 이국적인 급우들이 들어왔다. 나이는 비슷한 데, 또래들보다는 머리 하나만큼 더 크고 혈색이 좋았으며, 몸집도 청년들 이상으로 단단해 보이는 이들은 처음부터 우리들의 시선을 압도하였다. 이들은 교복도 좋은 천으로 따로 만들어 입었고, 방과 후 체육시간과 과외활동 때에 이들이 입는 츄르닝( 체육복)고 모자는 전부 일본제였고 처음 보는 희한한 패션이어서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눈길을 끌가에 충분하였다. 우리 학급뿐만아니라, 상급학년과 하급학년에서 한 날 한시에 전학한 조총련 유자녀들이 모두 9명이나 되었다. 

이들은 함흥역사 앞에 있는 ‘총련유자녀기숙사’라고 불렀던 고급 빌라에서 집단기숙을 하면서 인근의 중학교들에서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기숙사에는 요리사들과 세탁사, 빌라 관리원, 진료소 의사까지 상주하면서 이들의 편의를 보장해주었다. 그리고 평양에서 파견된 조선해외동포영접처 간부가 총련간부 자녀들의 학습과 생활을 지도하였다. 

처음에는 너무도 튀는 외모와 패션, 서투른 북한말 때문에 이들이 딴 나라에서 온 또래들 같아 말도 섞지 않았지만 함께 공부하고 어울리다보니 그들 중 한 명하고는 친구가 되었다. 서로 깊이 친해지고 또 학년도 높아지면서 우리 둘은 공부만 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견해, 희망과 미래에 대한 꿈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세상 행복은 다 누리면서 사는 줄 알았는데 그에게도 마음의 큰 상처가 있음을 알고 많이 놀라웠다. 

 그는 일본에 있는 부모님과 그리고 형제들을 너무도 그리워하였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조총련의 주요한 간부라서 북한에 충성맹세를 하기 위해서 바로 사랑하는 아들을 북한에 인질로 보내야만 했겠지만 그는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핵심간부들이 조총련을 배반하지 못하도록 자식들을 한 명씩 북한에 인질로 보냈어야 했던 부모들의 마음 특히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쓰리고 아팠을까? 

그렇다면 이들이 북한에 와서 귀국 시 약속대로 특별한 민족간부라도 되었는가? 그렇지도 않다. 그 친구는 함흥에서 의학대학을 졸업하고 치과의사가 되었다. 치과의사가 되었으면 잘 되었네, 라고 생각하겠지만 북한에서 의사는 기능직공무원에 불과하다. 간부가 아니다. 귀국자들은 절대로 간부로 등용하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 그를 몇 번을 더 만나기는 했는데  그는 강요당한 북한생활, 가족과의 생리별에 트라우마가 컸고, 도저히 행복해 하지 않았다. 우리 학교에 함께 왔던 9명의 조총련유자녀들이 대부분 이 친구처럼 일본의 가족들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 속에 눍어가고 있다.

13살밖 에 안 되는 너무도 어린 나이로 혈연단신의 북한으로 끌려와서 조국번영에 이바지할 큰 기둥으로 될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살았을 그들이 지금도 북한에서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고, 자신들을 “째포”라고 부르면서 경원시 하는 원주민들 속에서 부대끼면서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조총련 간부들과 동포들이 혼신을 다해 추종하는 북한의 본색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광복 77년이 넘도록 재일동포들을 꽉 틀어잡고 그들의 삶과 영혼까지 약취해온 북한이 오늘날엔 재일동포 3세 4세 시대에 김정은의 조총련을 꿈꾸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것인지 재일동포들은 정신을 똑바로 차렸으면 하는 바램이다.

       엔케이지식인연대 사무국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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